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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포 라베니체에서 뜻깊은 생일을 보내다

김포 라베니체에서 뜻깊은 생일을 보내다.

 

프리랜서로 재택근무를 하여 출퇴근을 하지 않아 개인 시간부터 시간 계획을 

내 마음대로 정할 수 있는 것은 참으로 좋습니다. 

갑자기 훌렁 떠나고 싶을 때는 노트북과 태블릿만 있으면 장소가 어디가 되었든 작업은 충분히 할 수 있으니까요. 

그날은 유독 날이 좋은 날이었습니다. 

하얀 구름이 푸른 하늘과 한데 어울리면서 솔솔바람이 불어 에어컨 대신 창문을 열고 

선선한 바람을 맞이하고픈 그런 날이였지요. 

아침부터 꼬인 업무로 인하여 그럴만한 여유도 없었기에 

몇 초 간만 창문 밖을 멍하니 보는 것이 다였을 뿐, 

다른 사람의 실수로 인해 빚어진 꼬인 업무를 하나씩 풀어서 파악하여 잘못된 부분을 고치려고 하니

뒷목부터 서서히 두통이 몰려올 정도였습니다. 

전날보다 눈을 떴을 때 우울감이 몰려오면서 일은 하기 싫고 늘어지고 싶은 날이었기에

더욱 일은 손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당장 급한 것은 아니지만 이미 계획한 하루 일과에서 이 업무로 인해 모든 것이 어긋나 버렸으니 

두통을 부르는 일을 어서 끝내버리고 보고 싶지 않은 마음뿐이었지요. 

 

 

일에 집중하면서 보낸 지 얼마나 되었을까요?

서서히 마무리가 되어 가는 그쯤에 친언니 전화가 왔습니다. 

생일인데 뭐 하고 있냐면서요. 

그때서야 알았습니다. 내 생일임을... 그래서 우울감이 몰려왔음을...

친할아버지 덕에 집안 장손인 막냇동생만이 어렸을 때부터 생일을 챙겨 왔습니다. 

언니는 큰딸이라서 부모님이 챙겨주고 성격 좋은 탓에 주변에 친구들이 많아 친구들이 챙겨주었습니다. 

그러나 조용한 성격으로 친구도 거의 없이 학교 아니면 일 집에서만 지내다 보니

가족도 친구도 친척들조차도 내 생일은 아예 아무것도 아닌 날처럼 지나왔습니다. 

그래도 돌잔치는 하지 않았을까 했던 것은 우연히 옛날 앨범을 보던 중 언니가 

예쁜 한복을 입고 돌잔치 사진을 보고 내것은 없나 찾아보았으니까요. 

당연하게도 없었습니다. 내 사진은 어디에도 없었지요. 

첫째는 딸이어도 집안의 복이라며 둘째는 아들 낳으면 된다고 하던 할아버지의 기대에 못 미치게

내가 태어났으니 참으로 애물단지가 되었다지요. 

오로지 할머니만이 나를 안아주고 보듬어 주고 예뻐하셨습니다. 

"사람은 태어난 이유가 있으며 삶이 있으며 축복받고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으니 

할미가 네게 사랑을 주어 훨훨 날도록 하마!

아무도 널 미워하지 못할 게야! 이렇게 사랑스러운 아이잖니!"

지금도 잊지 못하는 할머니의 따스한 말 

 

그 말씀 하나로 지금까지 버티어 온 것이며 내 갈길 내 할 일 내 삶을 찾았으며 만족하면서 감사함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유독 생일 당일에만 우울감이 찾아와서 가족조차도 연락이 와도 전혀 받지 않을 정도였는데

생일이었음을 생각지도 못하여 친언니의 전화를 받았지요. 

분명히 이런 날 부모님께 전화 한 통이라도 해야 하지 않냐는

본가에는 언제 오냐느니 잔소리만 할것이 분명하였기에

바쁘다는 핑계로 전화를 끊으려고 했습니다. 

 

대충 얼버무리고 끊으려고 하였으나 언니가 집 앞이니 잠깐 나오라 하였죠. 

처음에는 나가기 싫었습니다. 무엇이 좋다고 그리고 싫어하는 생일날 언니를 만날 이유는 없으니까요. 

폭풍 잔소리를 듣기 싫어서 대충 하고 나가니 차에 바로 타라고 하고선

집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었습니다. 

어디 가냐는 말에 조용히 있어보라고 하더니 

언니 자동차가 도착한 곳은 김포 라베니체 거리였습니다. 

인공 강처럼 만들어진 곳에서 다양한 상가들과 

볼거리 가득한 장소였기에

인터넷에서 찾아보고 한 번은 가봐야지 하던 곳이었지요. 

이런 마음을 언니가 알리는 없고 대체 여기는 왜 데리고 왔는지 한숨을 푹푹 쉬는 사이!

 

어느 레스토랑으로 데리고 들어가서 예약을 했다는 겁니다. 

언니 이름으로 예약한 곳에 앉으니 미리 주문하였던 스테이크가 나왔습니다. 

와인 한잔 정도는 괜찮지 않냐며 내가 즐겨 마시는 모스카토 화이트 와인을 어떻게 알고 

미리 주문을 해놓았는지...

동그란 눈으로 보고 있으려니 언니가 너도 생일인데 너도 소중한데 

제대로 챙겨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합니다. 

지난해에 첫애를 출산한 언니는 전혀 몰랐답니다. 

부모님의 심정과 우리 부모님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 출산을 하고 아이를 키우면서 깨달았다고 해요. 

이렇게 사랑스럽고 어여쁜 아이를 왜 차별을 할까 

왜 구분을 해야 하는 걸까 하면서 내 생각이 많이 낫다고 합니다. 

 

이상했습니다. 그동안 받아왔던 차별에 대한 설움이 할머니의 말로 겨우 버텨오던 내게 

모든 것을 내려놓을 수 있는 여지가 되었습니다. 

울면서 스테이크를 썰고 입에 넣고 오물거리면서 눈물을 흘리는 와중에

언니도 묵묵히 아무런 말도 없이 휴지를 건네주었습니다. 

 

그래도 넌 내 동생이야 하나뿐인 내 여동생!

생일 축하한다.